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강감찬

  강감찬(948~ 1031). 고려의 재상. 명장. 귀주대첩의 사나이~! 71살의 나이로 상원수가 되어 거란의 10만 대군을 흥화진에서 무찌르고 쫓겨가는 적을 귀주(구주)에서 대파했다.   강감찬(姜邯贊)은 처음 이름이 강은천(姜殷川)이며 금주(衿州 :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) 사람이다. 5대조 강여청(姜餘淸)1)이 신라에서 이주하여 시흥군(始興郡 :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)에 살게 되었는데, 이곳이 바로 금주이다. 부친 강궁진(姜弓珍)은 태조를 섬겨 삼한벽상공신(三韓壁上功臣)2)이 되었다. 강감찬은 젊은 시절부터 공부를 좋아하고 기발한 지략이 많았다. 성종 때 과거 갑과(甲科)에 장원으로 급제한 후 여러 차례 승진하여 예부시랑(禮部侍郞)이 되었다. 현종 원년(1010) 거란(契丹)의 왕이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서경(西京)을 공격3)했는데, 아군이 패했다는 소식이 오자 신하들이 항복을 발의했다. 그러나 강감찬만은 “오늘의 일은 그 죄가 강조(康兆)에게 있으니 근심할 것이 아닙니다. 다만 군세가 중과부적이니 그 예봉을 피했다가 서서히 이길 방도를 찾아야 합니다.” 하고 주장하며 왕에게 남쪽으로 피난하도록 권하였다. 2년(1011)에 국자좨주(國子祭酒)로 전임되었다가 다시 한림학사승지(翰林學士承旨)·좌산기상시(左散騎常侍)로 옮기고 중추사(中樞使)로 승진하였다. 이 때 사직단(社稷壇)을 수리하고 예관(禮官)에게 그 제사의 의례를 의논하여 정하게 하자는 건의를 올렸다. 이어 이부상서(吏部尙書)로 전임되었는데, 왕에게 아뢰어 자신이 개녕현(開寧縣 :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)에 소유한 밭 12결을 군호(軍戶)에게 주었다. 9년(1018)에 서경유수(西京留守)·내사시랑 동 내사문하평장사(內史侍郞同內史門下平章事)로 임명될 때 왕이 손수 고신장에, “경술년(현종 원년, 1010)에 거란 오랑캐가 전쟁을 일으켜, 한강(漢江) 곁에까지 깊숙이 침범해 왔노라. 당시에 강공의 계책을 쓰지 않았더라면, 온 나라가 모두 야만인이 되었으리.” 라 쓰니 세상 사람들이 ...